




극동極東의 대지, 정운靜煇
그 과거의 이야기
태초에 인간이 존재했다. 인간이 아직 지성을 가지지 못할 적에, 그들은 자연현상과 신을 결부시켰고, 놀랍게도 그 순수한 믿음은 신령이라는 존재를 탄생시켰다. 풀이든 바람이든, 굴러가는 돌이든… 어떠한 것이라도 인간이 진실한 믿음을 주고 받들어 모신다면 그곳에는 신령이 깃들었다. 그들은 초자연적인 존재로 인간들을 도우며 세상을 조화롭게 하였다.
인간들의 모든 역사에는 믿음이 존재했고, 그들의 믿음에 따라 신은 태어나고 또 스러져갔다.
어느 거대한 동쪽의 땅, 그곳에 터를 잡은 이들의 나라 정운.
정운의 이들 또한 시간이 지남에 따라 문명이 발달하였고, 이에 따라 권력자들은 왕권 강화 및 귀족들의 하위 계층에 대한 원활한 지배를 위하여 새로운 신앙을 설립하고자 하였다. 신앙이 만연한 이 세계에서 ‘신의 후예’라고 주장하여 백성의 지지를 쉬이 얻고자 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수많은 토착신앙들은 위세를 잃고 사람들은 점차 권력자들이 내세운 단 하나의 신앙을 섬기게 되었다. 왕실은 태양신을 유일신으로 추대하였는데, 이는 왕과 귀족 계층의 상징과 가까울 뿐더러 백성들이 가장 숭상하던 상징이었기 때문이다.
태양신이 신앙을 독점하자, 세계를 유지하던 균형이 깨지고 말았다. 낮이 터무니없이 길어지고 갈수록 더워졌으며, 비가 오지 않아 오랜 가뭄이 지속되었다. 흉작이 몇 년이나 지속되자 사람들은 심각성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제야 사람들은 기우제를 지내거나 유일 신앙을 폐지하는 움직임을 보였으나, 이미 왕가와 귀족들의 상징으로 걷잡을 수 없이 강대해진 태양신을 그 어떤 신령들도 막아내지 못하였다.
사람들은 죽어갔고 곳곳에 불이 번졌다. 노략과 폭동은 이제 하나의 일상이 되었다. 백성 모두가 태양신과 왕가에게 적개심을 가질 즈음 재앙과도 같은 대화재가 대지 전체를 순식간에 감쌌고, 불안정한 균형으로 곳곳에 지진을 비롯한 이상현상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세상에 비명이 가득하여 몰락이 가까워질 때 즈음, 모든 신앙을 소모한 태양신마저 기나긴 잠에 빠졌다. 작열하던 태양이 눈을 감자 상처가 가득한 세상에는 냉기만이 남았고, 정운은 모든 것을 잃었다.
태양이 떨어져 기나긴 잠에 든 후로부터 20년, 잠든 태양은 희미하게 빛을 내뿜으나, 본디 빛의 십분지 일도 발하지 못하고 있었다. 낮은 짧아졌고, 긴 밤에는 달조차 미약하여 완전히 뜨지 못하는 나날이 지속되었다. 예측불허의 대기와 말라버린 바다 사이로 갈라지고 황폐해진 대지만이 남았을 뿐으로, 계절마저 의미가 사라졌다. 동식물이 새로이 자라고 있으나 이 역시 미미하고, 종말은 기존의 생태계를 완전히 뒤 바꿔놓았기에 새로이 태어난 것들은 이전 문명에 존재했던 것과는 달라져 남아 있는 동식물 중 안전하게 섭취할 수 있는 것은 손에 꼽을 정도다.
그럼에도 살아남은 인류는 약 1%인 7만 명 정도로 추산되고 있다.
이들 중 문명을 재건할 수 있을만큼 지식과 기술을 가진 자들은 고작 수백여 명에 불과하였는데, 그중에서 재건을 원하는 이들이 모여 중앙(衆仰)이라는 사설 조직을 설립했다. 이후로부터 십여 년이 더 흘러온 지금, 여전히 무정부상태인 현 시점에서 그들은 유일하게 임시정부로서 기능하고 있다.


과거, 정운










